📘 마태복음 10장 — 열두 제자, 천국 건국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다
1.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권능을 주시다 (마 10:1–4)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마 10:1–4)
마태복음 9장 마지막에서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 달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9:37–38).
그리고 10장에 들어와, 바로 그 추수꾼들인 열두 제자를 세우십니다.
이제 천국 건국 운동의 전면에 설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임명하시는 장면입니다.
1) 제자 부르심은 ‘임명식’이다
“부르사”(1절)라는 표현은
이미 일정 기간 훈련 받은 사람들을 공식 사역자로 세우는 임명식에 가깝습니다.
오늘 10장의 시점은 대략 최소 1년 이상 예수님과 동행하며 훈련 받은 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제자는 부름받는 순간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부르심 이후 계속 자질을 함양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 그래서 예수제자가 되려면
성경을 깊이 알고,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마태, 요한, 안드레, 빌립, 나다나엘(바돌로매) 같은 사람들은
이미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를 갈망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요 1장 참고).
예수님은 그런 토양 위에 제자훈련을 시작하셨습니다.
2) 권능은 ‘자기 능력’이 아니라 ‘위임된 능력’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 더러운 귀신을 쫓고
-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십니다.
이 권능은
- 제자들의 탁월함을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 예수님의 일을 대신 수행하도록 위임된 능력입니다.
가룟 유다도 동일하게 권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의 열매는 예수님과 전혀 달랐고,
결국 탐심 때문에 멸망의 길을 갔습니다.
🔎 정리
- 권능 자체가 열매가 아니다.
- 권능은 천국 건국을 위해 주어진 도구일 뿐이다.
- 진짜 열매는 “그 사람이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사는가,
예수님 같은 제자를 또 낳는가”에 있다.
열두 제자는 구약의 열두 지파에 대응됩니다.
야곱이 열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계보를 시작했듯,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통해 **영적 이스라엘(교회)**의 계보를 시작하십니다.

2.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내심 (마 10:5–15)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10:6–7)
1) 이방이 아니라 먼저 이스라엘에게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5절) -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6절)
이것은
민족적 편견 때문이 아니라, 구원 역사상의 ‘우선순위’ 때문입니다.
- 유대인은 언약 백성,
하나님의 말씀(계시)을 맡은 민족입니다(롬 3:1–2). -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그래서 먼저 유대인 가운데 남은 자들을 일으키시고,
그 다음에 이방 세계로 확장되도록 하신 것입니다(사 49:6).
2) 전도의 핵심 메시지: “천국이 가까이 왔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7절)
- 예수님 자신이 천국의 왕이시기 때문에,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곧
“왕이 오셨다, 지금이 회개의 때다” 라는 선포입니다. - 신정국가 이스라엘은
본래 왕이신 여호와를 기다려 온 나라였습니다.
이제 그 왕이 실제로 오셨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3) 총체적 치유 사역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8절)
- 육체의 질병, 영적 죽음, 사회적 격리(나병), 귀신의 억압
→ 삶 전 영역에 걸친 타락의 결과 - 예수님의 복음은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회복시키는 복음입니다.
그리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십니다.
복음은 돈벌이 도구가 될 수 없고,
값 없이 주셔서 값 없이 나누는 은혜여야 합니다(사 55:1, 요 7:37).
4) 준비물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두 벌 옷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9–10절)
- 이미 가지고 있는 한 벌 옷과 신, 지팡이(목자로서의 최소 도구)로 충분하다.
- 그 이상 준비하며 ‘만약’을 대비할수록
하나님의 공급보다 자기 것을 더 의지하게 되기 쉽습니다. -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먹이시고 채우신다는 신뢰를 배워야 합니다.
5) 한 집을 거점으로 삼는 마을 전도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1절)
- 근동 문화에서는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 복음에 좋은 반응을 보이는 집,
그 한 가정을 마을 전도의 거점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6) 복음을 거부하는 성에 대한 선언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4–15절)
- 유대인은 이방 땅의 먼지도 부정하게 여겨
본국에 돌아올 때 먼지를 털어버렸습니다. - 복음을 거부하는 성은
**“이방과 같이, 심판 아래 있는 성”**이라는 상징입니다. -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견디기 힘든 심판이 있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줍니다.
🔎 5가지 전도 원리 요약 (마 10:5–15)
-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으로 (이스라엘 → 이방)
-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복음 선포
- 총체적 치유 사역 (몸, 영혼, 관계, 영적 영역)
- 한 가정을 전도의 거점으로 삼는 전략
- 준비물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3.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마 10:16–23)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6절)
전도훈련은 단기 여행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훗날 교회의 모든 선교 상황까지 내다보신 말씀입니다.
1)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 순결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 어리석고, 쉽게 당하고, 소극적이 됩니다.
- 지혜만 있고 순결이 없으면 → 교활해지고, 복음이 왜곡됩니다.
비둘기는 제물 되기에 합당한 존재이고, 뱀은 도망칠 기회를 찾아 순식간에 잘 빠져 나갑니다.
산 제물과 같이 자신을 드려 복음을 증거하되
'이 동네에서 박해하면 저 동네로 피하라' 하신 말씀처럼,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확장시키는 지혜를 가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순결, 둘 다를 겸비한 제자를 원하십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복음 사역은 본질적으로 위험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지혜 + 순결이 함께 필요합니다.
2) 박해는 ‘복음의 증거의 장’이 된다
“공회에 넘겨 주겠고…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18절)
- 종교 지도자들(공회, 회당)
- 세속 권력자들(총독, 임금)에게 끌려가는 것 자체가
복음이 전파될 기회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 고난을 통해
온 세상 앞에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을 증거하셨습니다.
3) 두 가지 지침
1️⃣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라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19–20절)
- 인간적인 변명, 자기 보호용 말, 계산된 화술이 아니라
그 순간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을 따라 담대히 말하라는 것입니다. - 베드로가 성령 충만 이후,
예수님을 죽였던 산헤드린 앞에서
아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장면이 그 실례입니다(행 4:8–12).
2️⃣ 믿음은 끝까지 지키되, 지역은 이동하라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22–23절)
- 우리가 **붙잡고 지켜야 할 것은 ‘믿음’**이지,
특정 지역이나 건물에 대한 집착이 아닙니다. - 박해를 피하여 다른 동네로 옮기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선교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 이 동네에서 박해를 받으면,
저 동네에서 또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3절)
→ 주님의 재림까지, 복음이 전파될 동네와 민족은
우리의 발걸음보다 항상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4. 두려움 없는 전도, 생명책의 기쁨 (마 10:24–33)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24–25절)
예수님이 받으신 오해와 모욕,
심지어 “바알세불(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비난(25절)은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네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모든 것이 드러나는 날이 온다 (26절)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 지금은 거짓이 이기는 것처럼 보여도,
최후의 심판대에서는 모든 진실이 드러납니다. - 그러므로 억울한 누명과 오해 속에서도
진리 편에 서 있는 자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2) 사람은 영혼을 죽일 수 없다 (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 사람은 몸만 해할 수 있을 뿐, 영혼을 멸할 수는 없습니다.
- 영혼까지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3)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허락 없이 떨어지지 않는다 (29–31절)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 값을 거의 치지 않는 참새의 생명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 그렇다면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얼마나 더 세밀하게 돌보심을 받겠습니까?
4)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를, 예수님이 시인하신다 (32–33절)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일은
단지 ‘믿습니다’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
박해 상황에서도 예수님 편에 서겠다는 고백입니다. - 그 고백을 주님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 가운데서 인정해 주십니다.
5. 십자가를 지는 제자, 제자를 영접하는 상 (마 10:34–42)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4절)
예수님은 분명 화평의 왕이시지만,
그 화평은 진리 위에 세워진 화평입니다.
그래서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 갈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1) 가족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리 (34–39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36–37절)
- 가족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 복음 때문에 가족과의 갈등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진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38절).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39절)
- 이 땅에서의 안위와 생명을 붙잡으려 하면
결국 더 큰 생명(영원한 생명)을 잃을 수 있고, 자기 공동체를 잃을 수 있습니다. -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고 잃는 길을 가는 사람은
오히려 참된 생명을 얻는다, 또한 공동체를 얻는다는 역설입니다.
2) 제자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 (40–42절)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0절)
- 예수님은 예수 제자와 자신을 동일선상에 올려 놓으십니다.
제자를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 전제는, 제자가 말씀을 전하는 제자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전하지 않고, 대접만 받으려는 사람이라면
이 약속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42절)
- 예수의 제자가 전한 말씀을 따라,
가장 작은 순종이라도 하는 사람(냉수 한 그릇이라도)은
반드시 주님의 상을 받게 됩니다. - 예수님은 제자의 가치를 극도로 높여 주시고,
제자를 섬기는 자에게까지 상을 약속하십니다.
마무리 · 오늘을 사는 예수 제자의 길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란 누구인가?”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입니다.
- 예수님의 권능을 위임받은 사람
- 그러나 권능보다 열매(성품, 제자화)를 더 중시하는 사람
- 가까운 곳에서부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총체적 치유를 행하는 사람 - 박해 속에서도 성령께 의지해 담대히 말하는 사람
-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사람
- 생명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
- 그리고, 또 다른 예수제자를 낳아
천국 공동체(교회)의 계보를 이어가는 사람
우리 각자가 이런 예수 제자의 길을 걷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서 있는 가정, 일터, 교회, 도시에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이 복음을
지혜롭고 순결하게, 담대히 전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다음 묵상: [마11]마태복음 11:1–15 보배를 눈앞에 두고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
▶ 이전 묵상: [마9]마태복음 9장 - 죄 사함의 권세, 새 포도주, 인내하는 믿음, 추수의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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