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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강해 & 묵상/창세기

[창11]창세기 11장 ― 바벨탑의 교만과 언약의 계보, 흩으심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구원

 

📖 창세기 11장 ― 바벨탑의 교만과 언약의 계보, 흩으심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구원


1. 하나의 언어, 하나의 목적 (창 11:1–2)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11:1-2)

창세기 10장에서 우리는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민족들이 번성해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11장에 이르러 인류는 시날 평지에 모여 거류하며 한 도시와 한 탑을 건설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날 평지는 오늘날 이라크·이란이 접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곧 바벨론 문명이 시작된 지역입니다. 이 바벨론 문명의 주역은 아마도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며 폭군이었던 니므롯(창 10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함의 후손으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인물입니다.


2. 인간 문명의 발전과 교만 (창 11:3)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고대 사회였지만 그들은 이미 벽돌·역청 등 건축 기술을 발전시킨 문명인들이었습니다. 실제로 바벨론 유적들은 대부분 돌이 아닌 벽돌 건축물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고고학적으로도 매우 정확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마음이었습니다.


3. 바벨탑의 진짜 목적 (창 11:4)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바벨탑 건축에는 분명한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① 하나님과 겨루려는 명예욕

“우리 이름을 내자” — 이것은 하나님과의 경쟁이며 교만의 극치였습니다.

②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집단적 거역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 이는 창 1:28, 창 9:1,7의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정면 불순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흩어지기를 거부하고 도시에 뭉쳐 세력을 만들며, 하나님의 심판마저 자기 힘으로 방어하겠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대홍수를 기억하며,
“다시 심판이 오면 인간의 힘으로 막아 보자”는 불신과 대항의 정신이 바벨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는 전 지구적 홍수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고 무지개 언약까지 주셨지만, 인간은 죄를 버리기 싫고, 언약은 믿지 못하며, 심판만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벨탑의 본질입니다.
회개 대신 높이 쌓는 인간의 헛된 저항이었던 것입니다.

 

바벨탑과 마귀의 교만


4. 바벨탑과 마귀의 교만

이러한 인간의 교만은 곧 마귀의 투영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사 14:12–15)

마귀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다가 교만으로 떨어진 존재입니다. 그 마귀는 지금도 사람들에게 교만을 심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교만이 올라올 때 그것이 마귀의 속임임을 분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단호히 대적해야 합니다.


5. “여호와께서 내려오셨더라” (창 11: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하나님은 편재하시며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내려오셨다”고 표현했을까요?

이는 인간이 아무리 높이 오르려 해도 하나님께 이를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려오셔야만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복음의 원리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종교는 “올라가려는 노력”이고,
복음은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무릎 꿇는 것입니다.


6. 언어의 혼잡과 하나님의 심판 (창 11:6–9)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이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강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언어는 원래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주신 가장 영적인 도구였지만, 타락한 인간은 그것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소통의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의 집단화를 차단하시기 위해 민족을 흩으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편만을 거부했지만 결국 편만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7. 바벨 이후, 하나님의 구원은 계보를 따라 흐르다 (창 11:10–32)

바벨탑 사건 이후 바로 이어지는 것이 셈의 족보입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분명한 구원사적 의도입니다.

  • 1–9절: 인간의 죄와 교만
  • 10절 이후: 하나님의 구원 준비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을 통해 구원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12장에서 본격적인 부르심이 시작되지만, 11장부터 이미 하나님의 시선은 아브람에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8. 성경의 계보는 언제나 마지막이 핵심이다

성경의 계보는 늘 중요 인물이 마지막에 등장합니다.

  • 아담 계보 → 노아
  • 노아 세 아들 계보 →
  • 셈의 계보 → 아브라함
  • 구약 전체 계보의 마지막 →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신약에는 오직 예수님의 계보만 등장합니다. 이후 혈통 계보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9. 혈통 계보에서 영적 계보로

구약의 계보는 단순한 출생기록이 아니라
영적 생명의 흐름을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이상 혈통 계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계보, 제자의 계보, 영적 생명의 계보가 중요합니다.

그 계보는 요한계시록에 **“어린 양의 생명책”**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5)

생명책이야말로 최후 심판대에서 가장 중요한 계보입니다.


10. 사래의 불임과 하나님의 생명 경륜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11:30)

이 말씀은 단순한 가정사 기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후손의 생명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주시며,
훗날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낳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드러내십니다.

생명의 계보는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어집니다.


11.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바벨탑은 교만의 도시였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바벨을 쌓고 있느냐, 아니면 아브라함처럼 나를 따르고 있느냐?”

생명은 전해질 때 증명됩니다.
내가 받은 복음이 누군가에게 다시 흘러갈 때
그때 나의 생명도 참되게 증명됩니다.


✨ 결론

  • 바벨탑은 교만의 상징입니다.
  • 아브라함의 계보는 은혜의 흐름입니다.
  • 생명책은 복음의 계보입니다.
  • 복은 계보를 따라 흐릅니다.

🙏 기도 제목

주님,
내가 바벨처럼 높아지려는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만 기록되는데 그치지 않고,
내가 전한 복음의 열매들이 그 책에 계속 기록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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