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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강해묵상/창세기

[창18]창세기 18장 1–17절 교제가 회복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

 

📖 창세기 18장 1–17절 교제가 회복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


1️⃣ 교제가 회복된 자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람은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음으로 언약을 깨뜨렸고,
그 결과 13년 동안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17장에서 하나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언약을 회복하시고 할례를 명하셨고,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8장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된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줍니다.

👉 생명의 약속을 듣게 되고
👉 하나님의 비밀을 나누는 자가 됩니다.


2️⃣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1–2절)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은 이번에는 사람 셋의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중 둘은 19장에서 소돔으로 가는 천사들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사람, 천사, 불, 구름, 음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현현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마자
곧바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땅에 엎드립니다.

👉 어떻게 알아보았을까요?

하나님과의 교제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성이 깨어 있으니, 하나님의 임재가 알아보아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실 때
알아보고 영접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지친 나그네를 섬기는 아브라함의 태도 (3–8절)

아브라함은 그들을 이렇게 초대합니다.

  • 발을 씻게 하고
  • 나무 아래에서 쉬게 하고
  • 최고의 음식으로 대접합니다

근동의 한낮은 매우 뜨거운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길을 가는 사람들은 분명 지친 나그네들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의 필요를 단번에 알아봅니다.

👉 적극적이고
👉 겸손하며
👉 간절한 사모함으로 섬깁니다.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지친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이것이 삶의 예배입니다.
정규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삶에서도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4️⃣ 웃음에서 약속으로 – 사라를 찾아오신 하나님 (9–15절)

그들이 묻습니다.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이번 방문의 핵심 목적은 사라였습니다.

“내년 이맘때에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문 뒤에서 이 말을 들은 사라는 웃습니다.

“내가 노쇠하였고…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의 마음속 웃음까지 아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13절)

 

17장에서 이미 사라의 출산과 낳을 아들의 이름까지 일러주신 바 있으므로,

👉 사라의 자조적 웃음은 ‘사라의 불신’이라기보다
👉 ‘아브라함의 전달 부재(또는 전달 실패)’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은 사라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물으십니다.


✔  이미 17장에서 출산은 ‘확정 통보’였다

창 17장은 단순한 예언이 아닙니다.

  • 사라의 이름 변경 (17:15)
  • 출산의 명시 (17:16)
  • 시기까지는 아직이지만 아들의 이름 ‘이삭’까지 지정 (17:19)

이건 가능성 제시가 아니라
👉 결정된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런데 18장에서 사라는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반응합니다.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8:12)

👉 이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이미 남편이 다 들었다면,
사라가 이렇게 반응할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  하나님은 왜 ‘사라에게’ 묻지 않고 ‘아브라함에게’ 묻는가

창 18:13을 정확히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느냐…”

하나님은 사라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사라를 책망하지도 않습니다.

👉 대신 언약의 대표자 아브라함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건 문법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중요합니다.

  • 언약의 책임자 = 아브라함
  • 언약 전달의 책임자 = 아브라함
  • 가정 신앙 교육의 대표자 = 아브라함

즉,

👉 “왜 웃느냐”는 질문은
👉 “왜 아직도 이렇게 반응하느냐”는 가정 전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  ‘사라가 웃었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묻는가

이 질문은 이렇게도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이미 말한 그 약속을
네가 사라에게 제대로 전했느냐?

그래서 이 질문은

  • 사라를 향한 책망 ❌
  • 아브라함을 공개적으로 망신 ❌

👉 넌지시 책임을 일깨우는 언약적 개입입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다치게 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권위도 무너뜨리지 않으시면서,
그러나 가정 안의 신앙 공백을 정확히 찌르십니다.

이건 굉장히 섬세한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  왜 하나님은 일부러 ‘사라가 듣는 자리’에서 다시 말씀하셨는가

18장에서는 하나님이
👉 사라가 장막 뒤에서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아신 채
👉 일부러 다시 출산을 선언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 아브라함을 우회하지 않고
  • 사라에게 직접 들리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 즉, 하나님이 직접 가정 신앙의 전달자가 되십니다.

이건 아브라함에 대한 꾸짖음이 아니라
👉 보완입니다.


✔  그래서 이 장면의 핵심은 ‘웃음’이 아니라 ‘책임’이다

사라의 웃음은 결과입니다.
원인은 그 이전에 있습니다.

  • 언약은 주어졌으나
  • 가정 안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고
  • 그래서 믿음이 함께 자라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은 그 사실을 드러내시되,
👉 정죄하지 않고
👉 다시 세워 주십니다.

그래서 18:14는 이렇게 끝납니다.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 이 말씀은
👉 사라를 향한 약속이면서 동시에
👉 아브라함을 향한 책임 재확인입니다.


✨ 정리

✔ 17장에서 이미 출산은 확정되었다
✔ 사라의 웃음은 ‘몰랐음’에서 비롯된 반응일 수 있다
✔ 하나님은 사라가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물으신다
✔ 이는 아브라함에게 넌지시 책임을 상기시키는 방식이다
✔ 하나님은 가정을 책망하지 않고 직접 다시 말씀하신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는 이전까지
남편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하나님을 들었을 뿐,
이제는 직접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처음엔 어이없는 웃음이었지만,
참된 웃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아들의 이름이 **이삭(웃음)**입니다.

하나님은

  • 숨길 수 없는 하나님이시며
  • 절망 속에서도 웃음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5️⃣ 교제가 깊어질수록 나누어지는 하나님의 비밀 (16–17절)

그들은 소돔으로 가는 길에 오릅니다.
소돔을 심판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교제가 회복되니
👉 생명의 소식을 듣고
👉 웃음의 축복을 받고
👉 하나님의 비밀까지 맡겨집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삶을 바꾸고, 시야를 넓히며, 사명을 맡기십니다.


✨ 맺는 묵상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면

  • 삶이 예배가 되고
  • 웃음이 회복되며
  • 하나님의 뜻을 함께 품는 자가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깊은 교제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

다음 묵상에서는
👉 왜 하나님이 소돔의 비밀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셨는지,
👉 그 비밀을 들은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 다음 묵상: [창18]창세기 18장 16–33절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에게 중보의 자리를 맡기셨을까

▶ 이전 묵상: [창17]창세기 17장 언약을 깨뜨린 인간, 더 큰 은혜로 덮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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