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17장 언약을 깨뜨린 인간, 더 큰 은혜로 덮으시는 하나님
1️⃣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서다 (창 17:1–3)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이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13년간의 침묵을 깨고 다시 찾아오십니다.
창세기 16장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래의 믿음을 세워 주지 못한 채
이집트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가정 문제를 넘어
언약 공동체의 연합을 무너뜨린 선택이었습니다.
그 후 13년.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 이것은 버림이 아니라 징계였습니다.
👉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 이것이 죄에 대한 가장 무거운 징계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것보다 더 큰 상실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성은
이 단절을 슬퍼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인생이 원래 이런 것”이라며 체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첫 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3)
가난한 마음이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음을 아파하고
그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마음이 일어날 때까지
때로는 인간을 곤경 가운데 두십니다.
2️⃣ 깨진 언약 위에 세워지는 더 큰 은혜 (창 17:4–6)
엎드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다시 언약을 선포하십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미 인간적인 방법으로 어그러진 현실을
그대로 끌어안으십니다.
아브람은 이미 이스마엘을 낳았고,
사실상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기준은 아브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입니다.
👉 창세기 15장의 횃불 언약이 여기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 언약식에서 짐승 사이를 지나신 분은 아브람이 아니라 횃불,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아브람이 언약을 어겼다면
원래라면 그는 죽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실 언약이 이미 세워져 있었기에
아브람은 심판이 아니라 은혜를 입습니다.
이 은혜는
아브람 개인을 넘어
그의 실수로 태어난 이스마엘과 후손에게까지 흘러갑니다.
👉 이것이 은혜입니다.
👉 죄의 굴곡을 그대로 안고, 더 큰 은혜로 덮으시는 하나님.

3️⃣ 이름을 바꾸시는 하나님 (창 17:5–6)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 아브람: 존귀한 아버지
- 아브라함: 여러 민족의 아버지
죄로 인해 줄어들 것 같았던 인생이
오히려 확장됩니다.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인간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늘 우리의 계산을 넘어섭니다.
4️⃣ 영원한 언약, 그리고 대대후손 (창 17:7–9)
하나님은 반복해서 강조하십니다.
- 네 대대 후손 사이에
- 네 후손에게
- 네 후손도 대대로
👉 언약은 개인 신앙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 반드시 가르쳐야 할 신앙, 이어져야 할 언약입니다.
아브람은 언약 공동체를 세우는 데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징계가 아닌 약속으로 순종을 이끄십니다.
5️⃣ 할례 – 언약의 표징 (창 17:10–14)
하나님은 단 한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할례는
- 언약 백성임을 드러내는 외적 표징이며
- 죄를 잘라내라는 내적 메시지입니다.
왜 성기인가?
👉 언약을 어긴 바로 그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 피 흘림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합니다.
몸의 표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표시조차 없는 믿음은 더 위험합니다.
이 할례는
오늘날 세례로 이어집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세례를 베풀라”
6️⃣ 즉각적인 순종 (창 17:23–27)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 99세의 자신
- 13세의 이스마엘
- 집안의 모든 남자들
👉 수치보다 순종을 택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 마무리 묵상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 죄를 잘라내고
-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며
-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삶
하나님은 이끌어 가시고
우리는 순종합니다.
👉 언약을 깨뜨린 인간 위에, 더 큰 은혜를 세우시는 하나님.
오늘도 그 은혜 안에서
제자화와 순종의 길을 걸어가시길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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